윤은지
10#영국 (마지막 나의 이야기..) 본문
'난생 처음 나혼자가는 첫번째 여행기 -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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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10년같았던 시간이였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은 다 못만났지만, 아무래도 사는동안에 언젠가는 만나게 되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집콕생활을 한 뒤, 차근차근 어떤일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여행중에 생각나던 번뜩이던 아이디어는 막상 나의 환경과는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배우고 싶은건 많은데- 막상 시도하려는 마음은 잘 생기지 않는다. 무엇때문일까? 나는 영국에서 발견한 나자신을 한국에서 좀더 가까이 마주했다. '그전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소용없는 마음속 무거운게 턱하고 내려앉았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그걸 좀더 내려놓은거 같아- 사실따지고 보면, 내무게도 아니였거든.. 왜 내 무게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내 무게가 아니야.. 나의 일이 아니야- ' 그리고 나는 이 해방감을 좀더 느꼈던것 같다. 근데왜 그뒤에 오는 무게에 짓눌린 내 자아와 환경과 상처는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았을까?
세대차이로 부터 느껴지는 상처가 우리세대에는 존재한다. 어른시대에는 그러지 않았어라는둥, 믿음의 자녀는 고분고분히 말을 잘듣고 신앙생활만 하여야 한다는둥, 내가 너나이때는 산에 나무를 하나뽑았어 라는둥, 믿음의 자녀는 교회안에서만 살아야 한다는둥- 기타등등. 우린 세대에 부딪쳐 우리 세대만의 올바른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한거다. 지금이야 생각해보면- 시대가 다르다는걸 알아야 하는걸 어른들이 받아드리지 못한것이지.. 왜 그렇게 해야했었냐에 대한 궁금함이 30대가 넘은 지금에서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연애를 하면 퇴학을 당하는 학교에서 기독교정신을 배웠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누구도 순수하지 못했다. 교사도.. 학생도.. 어른세대는 편견에 휩싸여 자신의 일보다 청년세대를 정죄하고 선입견으로 질타하기 바빴다- 그래서 아마 우린 무얼 배워야 하는지 몰랐을 뿐이다..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게 당연했던 세대에서 당연하지 않은세대로 지나오는 과정은 우리의 몫이였다. 어른들에게 왜 맞아야 하는지에 대해 물으면.. 학생들은 맞아야해, 우리들도 맞았거든- 이라고 대답했다. 당한대로 당해봐야한다는 어른세대의 연대적 투사들이 어린시절에는 어른들만의 당연한 권력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지금의 세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나는 청소년기에 섹스하지 않았다. 그리고 낙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시절 베이비박스에 담겨지던 아이들이나 졸지에 미혼모가 된 아이들이 기독교적 관점의 눈으로 그들을 매도하고 창녀 취급했다. 그런건 오로지 어른 세대들만의 관점이였다. 비로소 어른이된 내가 생각해보니.. 충분히 사랑의 눈길로 안아주고 보호받을 수있게 할 수있었던 일들이였다. 아, 어른들이 나쁘구나. 라고 깨닫게된건- 진짜 어른이 되고나서였다. 일찍 임신한 산모들을 사회는 창녀로 내몰수 있었다. 그래야 좀더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경험한다고 생각했던걸지 모르겠다. 일찍 사회에 나온 여학생들이 할 수있는일이 없다는것도 사회는 알았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런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줄리 없다. 사회는 그들이 돈벌 수있는 곳은 한가지 뿐이라고 애기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말했다. '함부러 몸굴려서 애낳았으면 본인이 잘못한것이지 사회가 잘못한게 아니야- 자기가 잘못산거야.' 그리고 그런류의 학생들은 당연하듯이 그런류의 학생들로 분류됬다. 오히려 잘된 학생들보다 잘못된 학생들이 많았다. 이 어른들은 사회를 학생들이 보호받을 수있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어른들이 과거의 어른들이 맞다. 나의 어른들이, 청소년시대의 어른들이 맞다- 그래.. 그때의 어른들은 참- 지금도 정말 나쁘다- 여전히 사회는 나쁜애들을 질타하고 함부러 몸굴리는 애들을 질타한다. 함부러 몸굴려서 인생 조진거야 라고 당연하게들 떠들고 애기했다. 그시절 그시대 여학생들은 '그래, 내가 몸굴려서 함부러 살아서 인생조진게 맞아- 어쩔수없는거야.'라고 생각했다.
영국여행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서 영국에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눈에 띄게도 내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끔찍하리만큼 혐호스러운 스토킹을 청소년기 시절부터 경험했다. 그경험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말로 형언할 수없는 고통이였다. 그 사회적 무게는 가히 놀라울정도로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왜 영국에 따라왔을까? 여행하면서 이또한 생각했다. 내가 아주 잘알던 사람들이 따라왔다. 카페사장, 몇몇의 자영업자들, 다니던 회사사람들, 이전교회의 장로님딸들, 연예인, 그리고 친인척들, 불특정 교회의 다수의 목회자들, 내가 졸업한 동명고등학교 동일학년의 학생들 기타등등.. 나를 위한 스토킹이 아니다. 개인의 욕정이나 욕심에 비롯된 것이지- 어리석다. 참으로 이유는 없다. 혼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행도중 알게된 이 스토킹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회가 잘못한걸까? 내가 잘못한걸까?..'
나는 부자가 아니다. 명문대를 나온것도 아니였다. 그렇다고 그럴싸하게 꾸미고 다니는 스타일도 더더욱 아니다. 번듯하게 대기업 회사생활을 한것도 아니다. 그런데왜 내게 이런일이 생기지? 하고 내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이전부터 경험한 이 스토킹이 가정내에서는 늘 내탓이였다. '너가 행동거지를 잘못해서 그런거야!! 너때문에 가족들이 다 스트레스야!! 도대체 밖에서 어떻게 하고다녔길래 그래!!' 엄마의 말이였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말에 당연히 맞대응했다. '나는 아무잘못없어. 내가 뭘잘못했다고 그래!!!!' 누가 나를 따라다니던 그건 그들의 문제지 내문제가 아니였다. 나는 청소년기에 내 스토커에게 물었다. '내가 어디가 좋아?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고 따라다녀?' 내가 한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내가 너랑 처음 짝궁이 됬을때- 내게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제대로 말걸어준건 너가 처음이야, 그리고 교과서를 빌려준것도 너가 처음이였어.' 정말 그게 다였냐는 내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 의도치 않게 그의 인생에 난생처음으로 말건 여학생이 됬다. 무분별한 친절은 사람을 오해하게 한다는데... 말도 걸지 말걸그랬다. 애초에 말걸지 않았다면, 이런일이 생기지 않았을텐데..!
어디서 부터 잘못된걸까... 나는 나를 이해하려고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타인을 완벽히 이해했다. 심리상담사들은 그게 맞다고 애기했다. 나는 그뒤로도 타인을 이해하는데 완벽히 노력했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부터 오는 마음의 병은 점점자라 나를 점점 짓눌렸다. 나는 잘못된 심리상담사를 만났다. 나는 내 문제에 대해 이해받고 싶었다. 멘토가 될만한 모든 스승에게 나는 나의 문제를 상담받았다. 그러나 오롯이 나자신을 마주 하지 못했다. 그저 상황은 바뀌지않는다는 말뿐이였다. 오히려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자세에 대해 또 배워왔다- 그래도 도움된건, 털어놓을 수있는 상대가 있다는 점.. 나는 내 트라우마나 상처를 인정하지 않았다. 처음 사회에 나오고 난뒤 나는 내 상처에 저항했다. 저항의 과정이 힘들었다. 나는 하나의 생명체로써 저항했다. 그리고 또 나는 상담사로 부터 치료를 의뢰했다. 반복에 반복이였다 - 그러나 누군가로부터 알선을 받은건지 무슨애기를 들은것인지, 모두가 대답은 비슷했다. 타인을 수용하라는 의무적인 대답이나, 내말을 믿지 못하고 망상이라고 판정내는 정신병원의사나- 스토커가 존재할리 없다는 병원의사의 단정에 내 모든 의뢰가 무너지기도 했다. 그런 비정상적인 의사의 말에 약을 복용할 순없었다. (지금껏 약을 복용해본적 없다.) 그리고 나는 종교적인 치유를 선택했다. 나는 기도회를 5개월 넘게 참여하며 온갖 말을 다해 기도드렸다- 역시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는 신으로부터 치유받았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버팀목이된 두번째 치유였다. 그뒤로 부터 내 인생은 바뀌었다. 나의 마음을 애이는 큰산이 무너지고 신이 함께했다. 신과 함께하는 인생을 사는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그래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 다는것을 알고있다.
모두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게된건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했을때 부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타인의 문제인데 내가 이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게 해꼬지를 한다는것은 내잘못이 아니였다. '왜그렇게 나한테 말해대는거야?' 타인을 수용하는 방법만 배운 내게 여느 상담사보다 더 특별한 능력을 얻은게 있다면, 상대의 비밀을 알아내는 방법이였다. 사람들은 나만보면 자신의 문제나 잘못을 애기했다. 나는 어떤 예수나 신은 아닌데- (내가 만약 신이였다면 심판자였을것이다.) 모두 내게 애기해댔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상대의 계획이나 범죄이력을 알게되곤했다. 어느부턴가 상대의 말을 방어적 태도로 듣지 않게된건 오랜 회사생활에 지치고 나서부터였다. 상대의 말을 듣는것보다 배우고 일을 하는게 더좋은 내가 굳이 심리상담사나 사회복지사가 아닌데 상대의 애기를 들어줄리 없다. '너는 사회복지사와 미술치료잖아'라고 애기하는 회사 동료에게 대답했던말은 '여긴 복지센터가 아니잖아-'였다. 내게 상담을 받고 싶으면 상담비를 먼저 내야하는데 말하는 사람은 있는데 돈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동시설에서 근무할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들은 때때로 가정사를 애기하며 내게 상담을 의뢰해 왔는데, 나는 아동일외에 다른일을 들어줄 여력이 없어 그런말들은 가뿐히 패스했다. '여긴 아동시설이고 내 대상자는 아동들인데, 엄마들이 상담하는거야?' 나의 매몰찬 태도에 불만있으신 분들이 많으셨지만, 나는 단호했다. (더이상 들어줄 여력이 없어-) 가정의 문제들이 의도치 않게 사회로까지 영향을 미칠때 사회는 책임져야 할때가 있다.
자영업에서도 같은 상황은 반복됬다. 어디서 알았는지 같이 일하는 많은 동료들이 내게 눈물을 고이며 상담을 의뢰했다. 나의 대답은 똑같았다. '여긴복지센터가 아니잖아-.' 나는 내가 일하는 곳에 카테고리가 분명한 편이다. 그리고 더이상은 어떠한일에도 상대의 치부를 알고싶진않았다. '너의 모든걸 꺼내줄수는 있어- 그리고 그뒤 상황을 받아드려야 하는건, 내가 아닌 너야..'
상대를 이해하는 일은 힘들다. 나자신을 이해하는일은 더더욱.. '그래도 상대가 친근한 마음으로 애기할 수도 있잖아, 그쯤은 이해할 수있는 일이지 않을까?' 라는 물음에도 물론 나는 답변할 수있다.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애기하지 않는게 예의야.'
'영국에서 스토킹하는걸 어떻게 알았나요? 망상아닌가요?' 눈마주쳤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유유히 레스토랑을 나오는 나와 그거리를 내려오는 그와 눈마주쳤다. '은지님, 은지님이 말한건- 단수인데요. 하지만 요앞전에 말씀하신건 복수였습니다.' 내가 가는 여행지에서 그를 두번이나 마주쳤습니다. 그는 여자친구와 있었구요. 앞전의 그와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연예인이였습니다. '또요?' 제가 영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같이탔구요. 저는 기내에서 내려 수하물쪽에 있었고, 그녀는 라운지로 올라갔습니다. '또다른..' 제 동명고 동문은 부부여행을 왔는지 같은 여행장소에서 마주쳤습니다. 또다른 친구도 마찬가지구요. 또다른 친구는 엄마와 함께왔더라군요. 그들은 모두 제 시야에 있었습니다.
-종결-
나는 영국여행 이후로, 취업이 되지 않았다. 왜 취직하지 않느냐는 부모님의 물음에- 취직중이라고 대답했으나, 부모님께서는 일부로 취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나보다. 공부도 잘되지 않았다. 물론 영국때문은 아니다. 그전부터 왠지 안됬으니까.. 그뒤로 난 또다시 종교적 삶에 매진했다. 모든 물음과 이유의 답은 신께로 부터 나오는것이다. 나는 불철주야로 기도했다. 그사이 가정불화도 있었고, 온전히 쉴수 없는 나는 또 나의 삶에 저항하며 안락하고 평안한 쉼을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또다시 듣지말아야 할일과 알지말아야 할 것을 알게되었다.. 난또다시 도망쳤다. 도망쳐 혼자 기거할 곳에서 투숙했다. 그러나 할머니댁에 들어와 잠시 거주하게 되었을때에 할머니를 불편하게 해드릴것이라는 염려로 불편했다. 어디에도 편한곳은 없었다.. 내가 보호받을 곳은 아무곳도 없었다. 그사이 할머님은 오랜지병으로 병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뒤 더 몸이 안좋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하게 됬다. 오롯이 나혼자 할머니집에 남게되었다. 그리고 그뒤 나도 지병으로 병원에 가게되었다.. 슬픈일이였다. 응급실에 누워 링겔을 맞는 나자신을 보며 죽음의 공포는 항상 존재함이 상기됬다. 정말 나는 죽을뻔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를 그 슬픈일에- 나는 그저 묵묵히 있지만은 않았다.. 나는 오랜시간 이후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간뒤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앨리스는 말했다. '여기 또다른 세계가 있어요.' 그말을 들은 가족들은 비웃었다. '터무니 없는애기하지 말거라-' 앨리스는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애기했다. 때마침 토끼가 지나갔다. 앨리스는 또다시 말했다. '지금 겨울인데, 토끼는 왜 여름옷을 입고 있어요?' 정원관리사가 애기했다. '토끼 마음이에요- 본인이 입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앨리스는 대답했다. '아..그렇네-' 앨리스는 토끼를 따라 그 차원의 문을 지나갔다. 그 뒤로 또다른 토끼들이 앨리스를 따라 차원의 문으로 들어갔다. 토끼는 한마리가 아니였다... '어.. 잠깐만, 이 차원의 문- 추운봄과 여름이 이어졌잖아?' 앨리스는 그제서야 토끼가 왜 반팔을 입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봄과 여름 그 사이.. 앨리스는 놀라워하며 차원의 문을지나 어떤 예쁜 정원 찻집에 들어섰다. 그러나 앨리스는 어떤이유인지 자신이 그 차원 속에 있다는걸 알지 못했다-.. '여기가 어디죠?' 겨울잠쥐가 애기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이 차를 먼저 마시면서 애기하자~' 곧이어 모자장수가 앨리스에게 차를 따라줬다. 그 차를 마신 앨리스는 서서히 기억이 지워졌다. 토끼가 애기했다. '이번에도 그 차원을 지나가면서 아주 진귀한 물건들을 많이 가져왔어~' 모자 장수가 말했다. '어서 그 물건들을 꺼내어봐!' 토끼는 대답했다. '이번엔 이 물건을 하트여왕에게 팔 생각이야.' 앨리스는 이 토끼새끼가 아주 손버릇 나쁜 좀도둑새끼라는걸 알게됬다. 앨리스가 말했다. '잠깐만요! 당신의 물건이 아니잖아요- 갑자기 없어지면 물건의 주인은 어떻게요?!!' 토끼는 말했다. '그건 내가 신경쓸일이 아니야! 어짜피 없어진지도 모를텐데, 올여름이 되기까진 물건이 그대로 있을거야!' 앨리스는 대답했다. '지금 훔친거임?' 겨울잠쥐는 말했다. '이년 기억 안지워졌네? 더때려넣어!!' 모자장수는 주전자를 들어 앨리스 입에 차를 들이부었다. 서서히 눈을 감는 앨리스를 보며 토끼는 애기했다. '아주 진귀한 물건은 이것뿐만이 아니야, 이년을 데리고 오기위해 이몸이 직접 이차원을 소개했어! 하트여왕에게 팔면 쏠쏠할꺼야!' 모자장수가 애기했다. '모두 잔을 들어! 위하여!!!!!!!!'
그뒤로 남한에 지진이 왔다. 지진 전조 증상처럼 가볍게 몇번 스치더니- 근래 내가 사는 지역 근처에 큰 지진이 왔다. 기도에 매진하던 나는 신께 어떤 응답이 왔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시간을 바꿀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확신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였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수있는 많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는데- 그 중하나가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것.. 그렇다면 어쩌면, 난 어떤 재앙을 막을 수도 있다. 곧이어 나는 다음 여행을 준비했다 - ... 믿거나?! 말거나!! -
To be continue.. Italy..
앨리스가 무수히 많은 차원을 헤매는동안,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앨리스는 애초에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듯이 애기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차원을 아는 사람은 앨리스 뿐이였다. 토끼는 앨리스를 자신의 하녀로 여기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토끼 집에서 다시 커지는 약을 먹은 앨리스는 집에 갇히고 토끼는 정원사인 도마뱀 빌을 보내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아보려 했다. 앨리스는 케이크를 얼른 다시 집어 먹고 작아지게 됬다.
By. _윤은지
The end...